스토리펀딩 연재4
스토리펀딩 연재 4
"온가족 모여 사니 참말로 좋제~"
#4대가 모여 사는 이이례 할머니댁
고산촌마을의 제일 연세 높으신 이이례(89) 할머니는 큰 아들 내외와 손주 내외, 초등학생인 증손녀까지 모두 4대가 함께 산다. 마을 한가운데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다. 고산촌에서 가장 많은 농사를 짓고 있는데 감, 나락, 고추, 마늘, 아로니아, 양파, 인삼농사 등 종류도 많다. 17세에 고산촌으로 시집온 이례 할머니가 이 마을에 사신지 벌써 70년이 훌쩍 넘었다. 백발이 성성하신 할머니는 멀리 대둔산을 바라보고 굽은 허리를 펴신다.
# 아들은 꿋꿋한 고산촌마을의 지킴이로!
할머니의 허리가 굽는 동안 할머니의 그 작던 아이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었다. 큰아들 김홍덕(70)씨는 고산촌에서 나고 자랐으며 마을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여름에는 마을 앞 냇가에서 친구들과 수영하고 물고기를 잡던 기억이 나요. 그땐 또래 친구들도 많고 동네에 사람들이 많았지...”
이 집안의 가장일 뿐만 아니라 이 마을을 이끌어온 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살림에 도시로 나가고 마을을 떠났지만 꿋꿋이 살아온 이 마을의 지킴이다. 힘들지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가을이면 질 좋은 곶감을 만드는 일에도 정성을 쏟는다.
마을의 반장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을 설득하여 마을 앞에 공동주차장과 정자를 지었다. 선구자적인 노력이었다. 명실공히 오늘의 고산촌이 있게 만든 분이지만 늘 겸손하다.
# 아들 며느리의 왼손이 되어...
이례 할머니 댁은 시부모님 때부터 살았고 세월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 집터라 하신다.
“왜정 때 불이 나서 새로 짓고 또 새마을사업으로 짓고 해서 집을 시방 세 번이나 지었어. 난 여기서만 살았는디 내가 너무 오래 사는 거 같어.”
할머니는 한 해가 다르게 작아지신다. 꼿꼿했던 허리도 언젠가부터 많이 구부러졌고 그래서 아이처럼 더 작아지신다. 그런 몸으로 할머니는 가만 가만 다니시며 아들며느리를 도와주신다. 앞에서 어떤 일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은 조력자가 되신다. 마늘과 파를 까고 냉이를 캐고 빨래를 개어주는 일, 멍석에 널어놓은 벼를 고무래로 뒤적여주는 일, 나물을 뜯어 삶아 말리는 일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말없이 도와주는 왼손이 되어 할머니는 이 가정에 큰 힘이 되어주신다.
#천등산 앞 고산촌으로 시집왔어요
23세에 운주 가척마을에서 이 마을로 시집온 흥덕씨의 부인 이정옥(67)씨도 그때를 회상한다.
“나는 천등산 뒤에서 천등산 앞 고산촌으로 시집왔어요. 큰집 형님의 중매로 만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철부지 나이에 시집왔어. 우리 남편은 참 다정했어요. 시집오는 날 저 큰 내의 징검다리를 남편 등에 업혀서 건넜어요”
시집 장가가던 그 날, 서로의 모습이 기억나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미소만 짓는다. 함께 산지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부부는 여전히 수줍어한다. 매일같이 모든 농사일을 부부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다 부러워한다.
# 손자와 증손녀의 효도를 듬뿍 받으며
모두들 도시로 가서 산다지만 이례할머니의 손자는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손녀딸도 마을에 몇 안 되는 초등학생으로 늘 증조할머니를 따라다닌다.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리기도 하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꼭 챙겨드린다.
큰 손자는 비닐하우스에 특용작물을 재배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하시는 양파재배를 돕기도 한다. 때론 도시에 가서 자신만의 원예기술도 배워가며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는 보기만 해도 든든한 손자와 증손녀가 대견하기만 한 이례할머니다.
“우리 아들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영락없는 사람이여. 성실하고 착하고, 우리 며느리도 그려. 서로 금슬도 좋아. 손자도 효자여, 여그 저그 혼자 사는 노인네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가족이 모두 함께 사니 어디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있간. 고맙지. 모두들 건강하기만 하믄 좋겠어. 내 새끼들.”